2016. 10. 22. 12:02 대구백년사진전
구한말 대구가 경제적 요충지가 되면서 경제적 배경에 의한 근대시민활동이 시작되었다. 대구는 수많은 자유사상가와 시인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해 동방의 모스크바로 불리기도 했다. 이 당시 기라성같은 대구의 인물들을 살펴보자. - 1919년 이여성 '계성학교 학생들을 모아 혜성단을 조직' - 1919년 제일교회 김태련 '만세운동을 조직하다' - 1919년: 현정건(현진건의 형) '임시정부 경상도 대표가 되다' - 1924년 이장희 '봄은 고양이로소이다를 쓰다' - 1925년 기생 금죽은 '대구여자청년회를 조직하다' - 1926년 이상화 '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' 시를 쓰다. - 1926년 권오설 '6.10만세운동을 주도하다'(대구고보출신) 조양회관 민족활동의 중심지가 되다 - 1921년 홍주일 김영서 정운기와..